영화를 보는 일이 너무나도 힘이 든다. 작년 가을에 보았던 – 어쩌면 쓸데없는 감성팔이 영화들 중 한 부류일 수도 있는 – 아르헨티나 배경의 영화 한편을 본 후 단 한편의 영화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나 스스로의 삶에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는데, 그것들이 내게 주는 고통을 잠시 제쳐두고 허구의 감정에 몰입하는건 정신분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사로부터 받는 위로는 짧았고, 다시 내 앞의 진짜 문제들을 맞닥들여야 하는 과정이 힘이 들었다. 늦겨울의 불안한 인간관계의 끝자락, 아니 끝자락보단 잠시간의 긴 공백이고 싶은 어느 날은 우연히도 내가 몇 달 만에 다시 극장을 찾아간 날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나서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던 이야기가 어두운 방 안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면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아마 그 분홍색으로 가득찬 커다란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호텔 로비보이였던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방 안에 있던 수많은 좌석들 중 어느 하나에 몸을 구겨넣고 창백하게 파랗고 작은 화면만 애타게 보고 있었다. 가까워질래야 가까워질 수 없는것 때문에, 불안이 불편을 낳고 다시 불편이 불안을 낳는 굴레 때문에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스크린속 남자가 자기 이야기를 끝마치기도 전에 도망치듯 그 어두운 방에서 나왔고, 5퍼센트도 남지 않은 휴대폰의 전원을 서로에게 절망과 실망을 주고받는데에만 쓸 수 밖에 없었다. 영화속 목욕탕 물 속에 몸을 담구고 이야기를 하던 노인의 이야기속에서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행복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었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주었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곳에서 말하는 행복을 받아들이기엔 내 바로 앞에서 여러 계절동안 지속되어온 적막이 너무나도 크다. 벌써 몇개월이 다시 지났다. 내가 영화관에서 뛰쳐나온 그 날 이후에도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호텔 목욕탕 속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다들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필요해하는 사람들과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고통을 받는 중이다. 영화를 보는 일은 너무나도 힘이 들고 아직도 영화를 한편도 보지 못하고 있다.

꿈 이야기

 

1.

꿈을 잘 꾸는 편은 아니다. 한두달에 한두 번 정도.하지만 가끔 꾸는 각각의 꿈들을 나름대로 선명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꿈에서 종종 반복되어서 나오는 장소들이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어느 건물들과 인공섬들. 반복적으로 지나가게 되는 장소들에선 몇일 후 다시 꿈에서 그 장소에 있게 되었을 때 헤매이지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고, 꿈이 반복될 수록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는 장소의 범위는 넓어졌다.

처음엔 꿈에서 깨고나면 꿈속 기억들이 흐릿해져 내가 꿈 속에서 같은 장소에 있는다는 사실을 깨닳지 못했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꿈 속에서 되풀이 되는 공간들이 있다는걸 꿈을 깬 직후에 느낄 수 있었다. 어느날 꿈 속에서 정말 오랬만에 다시 그 장소에 있게 되었고, 그날은 꿈 속에서도 내가 그 장소에 여러번 온 적이 있다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서 깬 후에도 기억하고 그 장소들을 싶어서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삼분의 일 정도밖에 돌아다니지 못했는데 그 장소의 모든 곳들에서 안개가 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안개가 점점 짙어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뒤 곧바로 꿈에서 깼다. 눈을 뜨자마자 수첩에 꿈 속에서 있던 장소에 대해서 메모를 하면서 다시 꿈 속에서 그 장소에 있게 되면 좀 더 자세히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날 이후로는 그 장소에서의 꿈을 다신 꾸지 않게 되었다.

 

2.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내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정말로 얼마 뒤에 그 사람과 사이가 안좋아지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나중에는, 지금껏 잘 지내던 사람이 꿈속에서 내게 화를 내던 꿈을 꾸고 나면 나 혼자 괜히 불안해져서 그 사람과의 사이에 집착하다가 상대방이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해서 나와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꿈속에서 반복되던 장소는 내가 의식하기 시작하니 점점 사라져갔는데 꿈속에서 나오는 인간관계의 불길한 징조는 의식하면 할수록 더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젠 꿈속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를 보고 난 뒤엔 그 사실만으로 그날 아침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