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56분

”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문의 글을 쓰지 않다보면 어느 새벽, 당신은 읽는 이가 기다린대도 긴 글을 쓸수 없게 됐음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먹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요리하지 않다보면 혼자만의 식사도 거칠어진다. 당신의 우주는 그런 식으로 비좁아져간다. ”

 

— from twitter

viyott murder case

연극 ‘비요뜨 살인사건’을 위한 리플렛 디자인

A reaflet design for the play ‘Viyott Murder Case’

스크린샷 2014-06-04 오전 7.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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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비요뜨 살인사건’ 의 서사적 주요 프레임인 살인사건은 극중서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름에서 살인사건을 수식하는 ‘비요뜨’ 역시 극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극 후반부에 지하철이 정차하는 역 이름이 ‘비요뜨’일 뿐이다. 연극이라는 허구의 프레임 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 같은 두 개의 소재가 환영의 형태로 존재한다. 환영 안에서 또다시 환영의 프레임이 생성되는 것이다.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들’ 처럼 환상이 환상을 낳는 모티브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허구 내에서 허구를 지각할 수 있게되는 각성상태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의 꿈 속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인물들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것에 집중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정체성을 들어내는 것과 대조적으로 살인사건의 첫번째 희생자로 나왔던 인물에 대한 극중 언급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서사적 불안정성이라기보단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각기 다른 개성의 여러 인물들은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고,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는 첫번째 희생자는 주인공의 욕망을 상징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고도가 오기를 갈망하지만 끝내 고도가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고도는 서사적 완결보단 외려 갈망과 혼란의 상징이 된다. 비요뜨살인사건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다만 고도처럼 아직 오지 않는 상태가 아닌, 서사의 시작과 함께 죽은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의 욕구가 극도로 억제되어있음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 2막에서 꿈에서 깬 주인공이 독백으로 장래희망을 언급함으로써 억제되었던 욕망이 꿈-현실 간 의식의 이동 과정에서 해소된다. 분열된 자아를 상징했던 인물들이 2막에 오면서 주인공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개성이 상실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과, 맨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을 동시에 주시하게 되는 장면은 이를 뒷받침한다고도 볼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주인공의 자아가 상실된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1막 맨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에게 위협을 가하던 인물이 2막 시작으로 전환되면서 주인공에게 호의를 배푸는 인물로 극적으로 전환되는 장면은 주인공이 심리적 극척점에 있는 대상을 서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 수있는데, 이것은 환상들이 중첩되어있는 세계에서 허구속 인물인 주인공 스스로가 허구에 대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며, 다시말하면 허구의 인물이 허구를 자각하는 ‘각성’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스스로의 자아를 잃어버림으로써 대신 스스로를 자각하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에덴동산을 잃는 대신 그들 스스로가 벗었다는것을 깨닳는것과 아날로지를 이룬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그동안 억제되어있던(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몇가지 감정을 습득하게 되는데 비요뜨 살인사건에서 주인공의 욕망이 해소되는 프로세스와 공통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극은 따라서 에덴동산 모티브의 재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억제되어있던 하나의 인격이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극 이라고 할 수 있다. (허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