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일요일

상대방의 뒤틀린 마음을 보아도 끝내 미워할 수 없는 것 같다. 매듭 앞에서 왜 굳이 서로 멀어져야 하는 선택을 하는지. 화난 마음이 가라앉는 일 보다도 서로를 필요해하던 순간이 잊혀지는게 더 빨리 찾아올텐데. 서로를 껴안고 있기에도 바쁜 삶인데 너는 주위사람들에게 가위표를 그어 네 근처에서 지워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4일 금요일

내가 평소에 나랑 다른 부류일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과 의외로 많은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많이 확인하는 요즈음이다. 또 반대로 나랑 지금껏 잘 통한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에게서 답답함 내지는 먹먹함을 잔뜩 느끼고 있기도 한다. 같은학교에 다니는, 나와는 전혀 다른 부류일 것만 같던 오렌지빛 J를 일요일에 만날 일이 있었다. 볼일 다 보고 날씨가 좋아서 벤치에 앉아서 이것저것 신변잡기를 늘어놓았는데, 우리과에서 나만 알고 있을 줄 알았던 어느 잡지를 나랑 거의 비슷한 시기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랑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아니다, 모아둔 양은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더 좋은 수집처를 아니까 그가 더 오덕이다.) 그 잡지의 과월호를 수집하고 있다는걸 알고 반가움과 경쟁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평범한 컬처매거진 이라거나 전공과 관련된 잡지도 아니고, 엄청 급진적인 출판디자인 잡지인지라 시각디자인 하는 사람들도 아얘 타이포그래피 같은 분야로 파고들어갈 것 아닌 이상 잘 안보게 되는 잡지였는데, 그래서 나만 알고있는 보물섬처럼 곳곳에서 파는 과월호를 여기저기서 사서 10권정도 모으고 있었는데 나랑 거의 비슷한 생각으로 모으는게 신기했다. 시각적인 취향이나 자기 개인작업 하고싶은게 소름돋을정도로 비슷해서 신기했다. 암실에서 실험적인 프로세스를 하고 싶은데 이경률짱이(이경률짱이 아니라 천경우짱이였나 가물가물하다) 작업계획서를 먼저 내라고 해서, 글로 자기 작업 설명 잘 못하는지라 답답하다고 하길래, 나도 암실에서 백붓이랑 핸드폰가지고 소소하게 했었던 기억들 말해주면서,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될것같은데? 실크스크린같은 미술적 방법과 사진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이잖아, 그러니까 사진의 경계에 대한 탐구를 해보았다고 말하면서 텍스쳐를 네가 그리지 않고 트리밍한 이미지를 이어붙여서 어쩌고저쩌고…” 식으로 말해주었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녹음을 해갔다….. 헤헤… 자기 책/잡지 오타쿠라면서 나한테 좋은 잡지도 추천해줌. 최근에 J는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개간호를 보고나서 편집을 여러사람이 번갈아가면서 한것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야기하다가 조심스럽게 S잡지 이야기를 꺼냈더니 맞다면서, 편집맡았던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편집을 해버려서 자기도 자기가 낸 잡지가 마음에 안든다고 했다. 잡지값도 비싸게 정했는데 주위에서 자기가 낸 잡지 사겠다고 하면 돈아깝게 사지 말고 자기가 보여주겠다고 말하고다닌다고 했다. 요즘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것저것 한다고 놀러오라고 했다. 밥먹자고 하는데 서강대근처에 뭐있는지 둘다 몰라서 연남동을 가자고 했는데 이아이 연남동 지리를 엄청 잘 알고있어서 반가웠다. 두세달쯤전에 한살어린친구 C랑 연남동 처음 들렀었는데, 서울 많이 돌아다니던 그아이도 연남동은 처음 와봤다고 했었어서 연남동에 관심있던 사람이 나밖에 없나 하고 의기소침해있었던적이있었다. 그런데 이곳지리를 꿰는 사람이 가까운 인맥중에 있었다니 참.. 그래도 40키친은 조금 비싼편이라는 생각은 떨쳐낼수가 없었다. 홍대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보단 조금 더 식당이 들어오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분위기있는 술집위주라. 돌아가면서 이랑이랑 길에서 지나쳤는데, 나는 전혀 눈치못채고 있었는데 지나가자마자 J가 방금 지나간 사람 이랑이라고 알려줘서 뒤돌아가서 싸인받았다. 신기해한쪽은 이랑이였다. “어떻게 아셨어요” 라며 놀라며 물어봄. 하필 그날 가방에 공책도 펜도 없어서, 읽고있던 책 속표지에 펜빌려서 급하게 싸인을 받았다.

요새 학교에서 그나마 자주만나는 사람들 중에 09학번 선배가 한명 있는데 1학년 내내 쭈구리여서 그랬는지 그리고 그 누나도 2학년 내내 쭈구리여서 그랬는지 서로 페이스북에서 이름만 자주 보고 지내다가 최근에 갑자기 밥 같이 먹게 되고 이야기할 일이 많아졌는데, 가끔 점심시간때 밥먹으면서 이야기하다보면 그 누나랑 친한 동기 한명의 이야기가 나올때가 많이 있다. 그냥 그럴때마다 속으로 놀라면서 그아이가 그런면이 있구나 하던게 대수였는데, 어제 점심때 1시간동안 잉여가 되어서 카페에서 단둘이 앉아있게 되었는데, 그누나가 막 자기는 누구랑 단둘이있을때 말 잘 안하는 성격이라 답답할거라고 겁을 주길래 무서워서 정말 앞에서 열심히 떠들다보니 화두가 다시 K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가버리게 되었다. 그런데 속으로 K에 대해서 서운하던 것들을 몇개 말했더니 C누나가 소름돋는다고 어떻게 자기가 느끼던거 똑같이 느끼고 있었냐면서 오열을 한다. 우려했던거와 달리 1시간내내 K에 대한 간증을 서로 나누다가 시간이 없어서 급히 헤어졌다. K랑 이야기할때 가끔 들던 몇가지 기분이 순전히 내가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건줄 알았는데 K와 엄청 친한 사람이 자기도 그렇게 느낀다고 말해주니까 그게 엄청 위안이 되었다. 나 스스로 모난부분이라고 자책하던 부분에 대해서 갑자기 보편성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유달리 신경쓰게 되는 몇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사람들과의 관계에 내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관계가 점점 꼬여버려서 마음이 아프다. 붙임성 좋고 매력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과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왔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건드리기조차 못하겠는 문제들이 하필 내가 가장 소중히 하던 사람들에게서 터져나온다. 그 사람들중 한명이, 신경쓰는게 심해서 그게 집착이 되면 상대방은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고 나보고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으면 된다고 말해주었는데, 머리론 그렇다고 하면서 엉망이 되어버린걸 확인한것 같을때마다 마음은 뒤집어지는것같다. 1년에 한번씩 전학을 다녀서 제대로된 친구 한명도 없던 10년전보다도 지금이 더 쓰리다. 그냥 지금까지 나와 어울리지 않을 사람들과 내가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했었던걸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