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지금은 남이 되어버린 어떤 사람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영화랑 드라마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냐고. 그때 내가 무슨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드라마가 더 좋은것같다고 했었다. 끝나버리는 이야기가 싫다고, 삶이 그렇듯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그때 그사람은 자기는 아니라고 했었었고, 나는 그런 그사람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은 적어도 이부분에 있어선 그사람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삶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순간에, 가장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점은 바로, 삶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점 인것 같다. 행복의 순간이든 불행의 순간이든 무슨일이 있고 난 뒤엔, 영화처럼 연극처럼 막을 내려버리면 참 좋을텐데. 무의미한 생존이 작년에 그랬듯, 엊그저깨 그랬듯,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걸 억지로 멈추지 않는 한 멈추어지지도 않는다는 것도 비극이다. 짝사랑을 위해 마법을 쓰고 염색을 하고 담배에 이름을 적어 불을 붙이던 주인공의 삶이 영화의 클로징시퀀스와 함께 멈추어버리던 어떤 영화를 보면서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헀다. 절망과 희망을 끊임없이 오가는 삶보다, 도로 위에서의 죽음이 더 합리적이고 당연해지는 순간에 영화 속 나레이션은 모스크바의 교통사고 사망률에 관한 짧은 통계자료를 들려준다. 행복을 추구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나 말고도 사랑해줄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있으니, 행복도 불행도 없는 순간이 예정보다 더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to D

고마워요. 당신에겐 옛 일이 되어버린 일이 지금의 저에겐 희망이 되었었거든요. 어쩌면 저는 지금 당신이 밟은 길을 따라 걷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직은 꽃이 피지 않은 –  혹은 영영 피지 못할 – 어느 꽃봉오리를 보고 있어요. 우연히도, 당신이 견딘 겨울과 저의 겨울은 닮아있더군요. 당신 앞에 활짝 피었었던 꽃을 지켜보며, 마찬가지로 저의 꽃봉오리도 저렇게 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겨울을 지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랬는지 당신의 봄이 제 눈앞에서 사라졌을때, 많이 슬펐어요. 안타까웠어요. 마치 저의 꽃송이가 가지에서 잘려나간 것만 같았어요. 다른 이의 계절을 제멋대로 언어로 뱉어내어서 미안해요. 그리고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봄이 지난 후에도 정원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꽃송이가 사라졌다고 슬퍼하기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