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글 1

어떤 책에서, 예술의 의미적 요소와 미적 요소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음악을 악보의 맨 마지막 음부터 맨 처음 음 순서로 – 다시말해, 거꾸로 – 연주를 하면 의미적 요소인 멜로디는 소멸되고 미적 요소인 음악적 형식만 남는다고 했다. 동의할 수는 없는 말 이었다. 멜로디를 ‘미’가 아니라고 전제하는 부분부터 편협한 생각이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글쓴이가 이런 글을 자신의 책에 쓰게된 경위에는, 기존의 의도되었던 순서가 이리저리 뒤섞여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에겐 ‘뒤엉킴’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던 경험이 무의식중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해체주의’ 라는 고상해 보이는 단어가 이미 이 경험들의 대유법적 표현일지도 모른다. 난 해체주의 미학에 관하여 배운 바가 전혀 없으니 내가 바라본게 보편적으로 맞는것일진 모르겠지만, 난 이것을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술에 취한 사람이 두서없는 문장을 이어가면서 자기 속마음을 꺼내듯, 자동기술법으로 쓴 글의 내용순서가 뒤죽박죽이듯, 우리의 이성으로 통제해 적절히 배치된 우리의 언어가 흐트러지고 일그러질 때 그 틈새는 재구축 되어 우리의 내면의 표상이 된다고 믿는다. 길게 이어져 있는 부드러운 흐름이 조각조각 나뉘어져 각각의 조각이 독립적인 형태로 존재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찾아낸다. 시간의 흐름의 한 절편을 도려낸 언어인 ‘사진’에서 ‘푼크툼’ 이라는 – 이 단어의 창제자인 롤랑 바르트 조차도 이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썼지만 끝내 명확하게는 설명해내지 못한 –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면서, 이것을 ‘우리를 찌르는 것’, ‘점’, ‘얼룩’,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 이라고 지칭하는 건 어떤 틀이나 구조에서 깨어져 나온 하나의 조각이 우리가 마음의 우물 속 깊은 곳에 던져놓은 것들을 비추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이 조형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쇼트를 이어붙여서, 이어붙인 두 개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끌어내는, ‘충돌’과 ‘파편’에 관한 어떤 개념을 만들었을 때, 그것은 그저 카메라워크의 기술적 진보 정도로 밖에 해석될 여지가 없는 것일까.

사실 아주 사소한 경험들에서 시작한 생각이었다. 제한된 글자 갯수로만  글을 쓰는 어느 소셜 서비스. 긴 호흡의 글을 쓸 때면 한두 문장 단위로 글을 나누어서 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걸 읽는 사람은 여러사람들의 한두 문장 짜리 글이 뒤섞인 상태에서, 거꾸로 읽게 된다. 맨 마지막에 쓰인 글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다. 때론 글쓴이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 안엔 때론 나의 말이 있었고 나의 생각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내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각조각난 무수한 문장들 앞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개어내고 있었다는걸 알았다. 좋은 것일지 나쁜 것일지 판단은 서지 않는다. 그저 이것이 나만의 거울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curriculum vitae

1 자신에 대한 소개 (학창시절의 교내외 활동을 중심으로 기술)

말을 막 뗐을 무렵부터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게 하는걸 좋아해 온 아이였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제가 연구원 같은 진로를 선택할 줄 알았다고 해요. 아버지가 지방 장기발령을 많이 받아서 어릴 때부터 자주 이사를 하다가 중학교 때는 학구열이 유독 심했던 지역에서 살게 되었어서 주위 분위기와 부모님 등 여러 외적 압박 때문에 학업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학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오랜 친구를 사귀지 못해 낙서로 저만의 상상 속 세계를 그리면서 놀았어요. 그러다가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어요. 한참 MP3나 핸드폰 등이 중고등학생들에게도 보급되던 때였어요. 그때 그런 물건들의 디자인을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어요. 단순한 모양이나 색깔 정도를 넘어, 그 디자인이 어떤 식으로 나와 소통을 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말 즈음 부모님께 미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학업에만 열중하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고, 그에 대한 반항심이었는지 학업 외의 것들에 더 관심을 쏟기 시작했어요. 고2 때는 보드게임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3학년 때는 저같이 사진을 찍던 사람들끼리 인터넷으로 동호회를 꾸려서 함께 활동하다가 결국 사진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어요. 대학교 1학년엔 제 작업에 대해 고민도 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서 간 매체 전시도 준비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던 그해 겨울 우연히 서점에서 어떤 잡지를 보게 되었는데, 단순한 형태의 도형들만으로 표현한 표지의 디자인이 인상적이어서, 비닐포장 때문에 안쪽 내용이 짐작되지도 않는 그 잡지를 사서 읽었어요. 국내외의 소규모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들의 작업을 소개해주는 이슈였는데, 제가 추구해오던 것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느껴졌어요. 전공으로 배우던 사진보다도요. 그 상태로 군대에 갔다 와서, 휴학을 1년 더 연장해서 내가 원하던 게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배우다가 디자인을 제대로 배워보기로 결심한 게 올해 여름이었어요. 995

2 지원동기와 지원한 분야를 위해 어떤 노력과 준비를 해 왔는지 기술하시오.

사진으로 충족시키지 못했던 갈증을 디자인을 통해서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사진과 디자인은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생각되었어요. 사진이 기존의 조형물을 이미지화시키고 언어화시키는 것이라면, 디자인은 의도된 이미지대로 대상을 조형할 수 있기에 제가 더 깊게 관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진을 1년 넘게 배우면서 사실 제일 많이 부딪혔던 한계가, 저의 이미지가 기존에 존재하던 조형물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이었던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저의 작업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들을 프로파간다로 억지로 끼워 맞추어 나가야 하는 일에서 회의를 느끼기도 했어요. 하나의 완전하고 의미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나 합리적인 형태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오는 순수한 쾌감 같은 게 절실해서 디자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 같아요. 전문적인 미술교육은 받질 못했어요. 올해 2월 즈음에 아는 사람이 비전공자 10명 정도를 모아서 두 달짜리 드로잉 수업을 할 때 참가해서 배운 게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달쯤 다닌 미술학원 이후로 처음 받은 미술 수업이었어요. 그 이후로 입시 미술을 배운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가면서 그림을 그려 왔어요. 손 같은 걸 많이 그려보면 좋다고 해서 공책을 들고 다니면서 계속 손을 그려보았고, 인터넷에 인체 크로키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그림 자료 모아둔 사이트를 소개받아서 거기에서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어요. 기출문제들을 찾아서 풀어보면서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전시를 찾아보러 다니면서 제 발상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했어요. 770

3 미술 또는 지원분야와 관련된 서적으로 인상 깊었던 책에 대하여 기술하시오.

예전 학교 1학년 커리큘럼이 파인아트 경향이 강해서 그런지 미학 관련 책은 접할 기회가 조금 있었어요. 기억 남는 책들은 여럿 있었지만,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그 이후, 동시대 예술과 역사의 울타리’가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 깊은 책이었다고 기억해요. 힘겹게 읽었어요. 책 자체가 워낙 두껍기도 했지만 읽는 내내 혼란스러워서 더욱더 그랬던 것 같아요. 철학적인 해석 등을 통해서만 그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근현대 작업들을 헤겔을 인용해서 비평하면서, 순수예술이 외부의 가치에 편승해서 자신의 효용성을 인정받으려는 건 잘못되었다고, 모든 순수예술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이들 간에 좋고 나쁨을 가려내려는 행위는 전제 조건부터 잘못되었다는 게 요지였어요. 전 사실 예전에 선언문 적 예술이나 구제 비평 등에 비중을 절대적으로 크게 두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작품 그 자체의 인상이나 내면에서 나오는 작가의 푼크툼 같은 것들에 비중을 전보단 더 크게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이후에 베네데토 크로체의 표현주의 미학에 수긍을 많이 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551

4 장래 희망에 대해 기술하시오.

웹 디자인 같은 UX 디자인 이나 출판디자인을 하면서 겸으로 개인적인 파인아트 작업들을 진행하고 싶어요. 사진공부를 하면서 얻은 것들이 디자인으로 전공을 옮긴다고 해서 불필요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얻은 사진적 감각을 디자인에서 역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또, 잡지처럼 사진과 글과 디자인적 요소가 섞여 있는 매체를 다룰 때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던 걸 제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어요. 물론 모든 잡지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가끔 특별한 잡지들은 인쇄물을 넘어서 제게 좁다란 다락방과 같은 공간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어요. 책처럼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 포스팅처럼 동일한 내용이 복사되어서 무한 반복되는 공간도 아니고, 나랑 동시대를 사는 누군가가 저를 초대해서 자기가 최근에 발견하고 수집한 걸 보여주고 누군가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도란도란 들려주는 방 같았어요. 디자인은 그 방의 공기라고 생각했어요. 잡지의 분위기이기도 했고 색깔이기도 했고 잡지 속 화자의 표정이기도 했어요. 또 디자인을 통해 저의 의도대로 사람들의 시선이나 행동을 유도하는 작업이 제가 작업에서 추구해오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던 디자인 분야도 UXD의 한 종류였고요. 오브젝트의 조형적 측면에만 단편적으로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와 정보교환이 일어나는 것. 사용자와 대상이 서로 영향을 주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중에서 웹 디자인은 제가 어릴 때부터 조금씩 배워와서 기술적 장벽도 낮게 느껴졌어요. 또 잡지와 마찬가지로 사진과 그래픽 디자인이 많이 사용되는 매체이기도 해서 다른 것보다 좀 더 쉽게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552

 

내야 했을 곳에 차마 내지 못한 글. 20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