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xiety

 

 

나 스스로의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 날들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필요없고 그냥 평온하게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불안해 하고있는 스스로한테 너무 화가 난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선운사에서』 최영미

본능적인 감각이 좋은 사람이었다 너는. 항상무언가가 넘쳐흐르는 느낌이 들었고, 이화동을 좋아한다고 했을때 반가웠고, 라스폰트리에 도그빌도 너때문에 알게 되었구나. 도쿄를 집에서 한번보고나서 집에 놀러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마 무슨 이야기하다가 도쿄이야기가나와서 네명이서 다시봤었지. 그때는 정말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이 밤이 지나갔었는데. 수술할일이 있어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학교에서 나무자르다가 짜투리로 만든거라고 하면서 허준선생이라고 글씨 파서 페인트 칠해서 주면서, 부적이라고 했었나 그랬다. 지금도 자주 쓰는 수첩 주머니 어딘가에 그게 들어있고. 너희학교 가고싶다고 했을때 디자인과 갈거냐고 너가 물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너의 말을 들을걸. 바보같이 제대하고 1년 휴학하는동안 하지말았어야할것들을 전부다 하면서, 했어야할것들을 전부다 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너가 나한테 말했던것들이, 어쩌면 너는 다 잊어버렸겠지만 지금 나에겐 힘이되는것같아서 고맙고. 못살게 군건 내쪽인데 받은게 많은 쪽도 나인것같다. 괜찮아지면 보자고 했지만 나는 아직 괜찮지 않은것같고, 너 역시 그런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훌훌 잘 털어내는 성격이니 그나마 좀 나으려나. 작년에 광화문 앞에서 몇초동안 인사를 나눴던 일이 사실 마지막으로 보게 될 날인줄 알았는데, 비록지나가면서였지만 그래도 볼수있었어서. 좋다는건 아닌데 싫지도 않고 그랬다. 무슨감정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많이 떨었던것같다. 지나가버릴 사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네가 나한테 준 몇가지들이 나의 어딘가에 깃발처럼 꽂혀서 무언가를 알려주는것같다. 앞으로 오랫동안 지우지 못하고 남아있겠지.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완벽한 사랑을 하렴. 행복하게 살아.

apollo and daphne

 

 

 

“기다려 주어요, 페네이오스의 딸이여, 나는 그대의 원수가 아니랍니다. 그러니 내게서 도망치지 말아요. 그런데도 당신은 어린 양이 늑대에게서 도망치듯, 비둘기가 매를 피해 도망치듯 내게서 달아나고 있군요. 내가 그대를 쫓아가는 것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오. 걱정스러워요, 그렇게 달아나다가 돌에 걸려 넘어질까 걱정스러워요. 나는 당신이 나로 인해 고통받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그러니 제발 천천히 도망쳐요. 나도 천천히 따를 것이니.”

viyott murder case

연극 ‘비요뜨 살인사건’을 위한 리플렛 디자인

A reaflet design for the play ‘Viyott Murder 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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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비요뜨 살인사건’ 의 서사적 주요 프레임인 살인사건은 극중서사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름에서 살인사건을 수식하는 ‘비요뜨’ 역시 극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극 후반부에 지하철이 정차하는 역 이름이 ‘비요뜨’일 뿐이다. 연극이라는 허구의 프레임 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 같은 두 개의 소재가 환영의 형태로 존재한다. 환영 안에서 또다시 환영의 프레임이 생성되는 것이다. 루이스 호르헤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들’ 처럼 환상이 환상을 낳는 모티브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허구 내에서 허구를 지각할 수 있게되는 각성상태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의 꿈 속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인물들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것에 집중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정체성을 들어내는 것과 대조적으로 살인사건의 첫번째 희생자로 나왔던 인물에 대한 극중 언급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서사적 불안정성이라기보단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각기 다른 개성의 여러 인물들은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고,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는 첫번째 희생자는 주인공의 욕망을 상징한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고도가 오기를 갈망하지만 끝내 고도가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고도는 서사적 완결보단 외려 갈망과 혼란의 상징이 된다. 비요뜨살인사건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다만 고도처럼 아직 오지 않는 상태가 아닌, 서사의 시작과 함께 죽은 상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은 주인공의 욕구가 극도로 억제되어있음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다. 2막에서 꿈에서 깬 주인공이 독백으로 장래희망을 언급함으로써 억제되었던 욕망이 꿈-현실 간 의식의 이동 과정에서 해소된다. 분열된 자아를 상징했던 인물들이 2막에 오면서 주인공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개성이 상실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과, 맨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을 동시에 주시하게 되는 장면은 이를 뒷받침한다고도 볼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주인공의 자아가 상실된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1막 맨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에게 위협을 가하던 인물이 2막 시작으로 전환되면서 주인공에게 호의를 배푸는 인물로 극적으로 전환되는 장면은 주인공이 심리적 극척점에 있는 대상을 서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인지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 수있는데, 이것은 환상들이 중첩되어있는 세계에서 허구속 인물인 주인공 스스로가 허구에 대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며, 다시말하면 허구의 인물이 허구를 자각하는 ‘각성’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스스로의 자아를 잃어버림으로써 대신 스스로를 자각하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성서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에덴동산을 잃는 대신 그들 스스로가 벗었다는것을 깨닳는것과 아날로지를 이룬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그동안 억제되어있던(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몇가지 감정을 습득하게 되는데 비요뜨 살인사건에서 주인공의 욕망이 해소되는 프로세스와 공통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극은 따라서 에덴동산 모티브의 재해석으로 볼 수 있으며 억제되어있던 하나의 인격이 각성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극 이라고 할 수 있다. (허준석)